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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덕 ,잡학/1,2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지상전의 왕자 - 독일 티거 전차

by 신나는 미니언 _$_@_ 2023. 2. 1.

제2차 세계 대전 지상전의 왕자인 나치 독일의 티거 전차는 형식번호상 6호 전차라곤 하지만 5호 전차 판터 보다도 앞서 개발되고 배치됐기에 대전 후기에 대세를 탄 경사장갑이 아니라 전통적인 대전 초기 독일군 전차의 특징인 수직방향 장갑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나치 독일의 티거 전차는 나치 독일이 개발 운용한 중전차로 정식 명칭은 Panzerkampfwagen VI Ausführung H1 (6호 전차 H1형)이었다가 1943년 3월 대대적인 개량을 거친 티거들은 Panzerkampfwagen VI Ausführung E(6호 전차 E형)으로 명명됐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식 명칭보다는 Tiger I  티거(타이거), 곧 호랑이라는 별칭으로 불렀고 1944년 2월 아돌프 히틀러의 명령으로 정식명칭에 Tiger가 들어가서 Panzerkampfwagen Tiger Ausf. E가 됐습니다.

티거 전차의 데뷔

1942년 초반에 생산을 개시하여 1942년 9월 23일 소련 침공인 레닌그라드 전선에서 첫 데뷔하게 됩니다. 총 4대가 투입되었으나 초기불량 문제에 소련군의 화망에 걸려 전부 주저앉아 버리는 굴욕을 겪었으나, 투입된 전장도 소련군이 이미 정조준하고 노리고 있는 좁은 곳인데다가 티거에게는 걸맞지 않은 늪지대나 연약지반이 많아서 이렇게 영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이때의 경험으로 티거는 몇 가지 결함이 수정되며 운용교리가 정립된후에, 티거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 티거 전차의  활약상

1942년 12월 20일, 튀니지의 레조 디 칼라브리아 항구에 도착하여 북아프리카 전역에 투입된 티거를 장비한 1942년 5월에 창설된 501 중전차대대는 이미 북아프리카에서 추축군이 신나게 밀리는 상황에서 부대 자체도 티거를 완편 장비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11월 8일에 알제리로 상륙한 미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고 이후 3월 13일에 추가로 지원온 504중전차대대 1중대가 합류되면서 5월 17일까지 150여 대의 미군 전차를 파괴 합니다. 카세린 전투에서 미1기갑사단을 격파하며 10대의 피해만 입는 대활약을 펼쳤습니다. 독일 아프리카 군단이 항복할 때까지 티거는 총 7대의 전투손실을 입었으며 그동안 300대가 넘는 영연방군과 미군의 전차를 격파했습니다.

 

1942년 말부터 계속된 레닌그라드를 해방시키려는 소련군의 공세를 막아내며 독일 중전차 대대 중에서도 특출 난 활약으로 수백 대의 소련군 전차를 날려버리며 이를 저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거기다 제3차 하르코프 공방전에선 중대 단위로 투입된 티거가 하르코프 북방에서 펼쳐진 소련군 기갑부대의 반격을 분쇄해 내며 티거의 위력을 톡톡히 보였고, 여기서 티거는 설원에서의 기동 전까지 수행해 내는 능력을 보였습니다. 한 예로 이 무렵 티거 2대가 T-34 전차 수십여 대와 교전하여 16대를 격파하자 나머지 소련 전차들이 후퇴하기 시작했지만 이들을 추격 18대를 추가로 격파했습니다.

 

▶ 티거 전차 에이스들

티거 전차는 대전기간 내내 우수한 방호력으로 승무원들을 지켜주며 무수히 많은 전차 에이스들을 배출했습니다. 오하네스 뵐트 139대 이상, 오토 카리우스 150대 이상, 쿠르트 스펠 168대 이상, 미하엘 비트만 138대 이상, 마르틴 슈로 이 프 161대 이상, 알베르트 케르셔 100대 이상 등, 티거 전차는 100대를 넘는 격파수를 찍은 에이스를 10명 이상 배출했습니다.

▶ 티거 전차 의 몰락

그렇다고 티거 전차가 무적의 전차까지는 아니었습니다. 특히 전쟁 후반으로 갈수록 연합군도 티거의 유명세만큼이나 대응책을 고민했기 때문. 서부전선에서는 M4셔먼의 76mm HVAP탄은 논외로 치더라도, 76mm M62 피모철갑탄이나 M79 경심철갑탄에는 900야드 이내로 접근하는 것을 허용하면 관통될 위험이 있었고, 측면이 노출될 경우 그보다 더 먼 거리에서도 뚫릴 위험이 높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90mm 대전차포 혹은 그것을 장비한 M36 잭슨은 원거리에서도 17 파운더보다 더 정확하고 파괴적인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영국의 경우 17파운드 대전차포나 그것을 장비한 셔먼 파이어프라이의 경우는 명중률로 까이는 APDS 말고도 그럭저럭 쓸 만한 명중률을 보인 APCBC탄으로도 멀리서 티거를 거꾸러트릴 능력이 있었습니다. 동부전선으로 가면 SU-85와 T-34의 85mm APCR이 근거리에서 티거의 정면을 관통할 수 있었고 SU-100의 100mm나 IS-2, ISU-122의 122mm는 장거리에서 티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일반 견인포로도 사용된 152MM ML-20 곡사포의 무지막지한 고폭탄의 위력 때문에 차체 자체가 파괴되기도 합니다.

▶ 티거 전차의 무장, 성능

 티거 전차의 주포는 사실상 Flak36의 포를 거의 그대로 얹은 물건이라 구경장(L/56)까지도 동일합니다. 등장 당시인 1942년 기준으로, 표준 교전거리 이내(종종 그 이상에서도)에서는 연합군의 모든 전차를 각도에 상관없이 일격에 파괴할 수 있는 위력을 가진  보였습니다.  포의 위력과 별개로 사격 능력도 뛰어났습니다. 고성능 포구 제퇴기 안정된 무게중심의 고중량 차체와 서스펜션 덕에 오히려 원본보다도 훨씬 안정적인 사격이 가능했으며, 88mm라는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구경의 일체형 포탄으로 장전 속도도 빠르고 휴행탄수도 많았습니다.

 

티거 전차에 채용된 초기 엔진은 마이바흐 HL210 P45엔진은 V12에 최대출력 650PS으로 당시에는 세계 최대 출력의 가솔린 엔진이었지만 전투중량 57톤의 거구를 움직이기에는 충분치 않아, 중기부터 마이바흐 HL230 P45엔진으로 교체하며 최대 출력이 700PS으로 증가합니다.  유압식 조향장치, 전진 8단 후진 4단의 반자동변속기도 최초로 탑재되었다. 이 변속기는 운전이 쉽고 선회반경도 놀라울 정도로 작고 제자리 선회도 가능했지만, 티거의 궤도 장력을 유지하는 후방 유동륜이 바닥을 지탱하는 보기륜보다도 작고 보기륜과의 높이 차이도 크지 않아 급기동 시에는 빠지기 쉬웠다고 합니다. 티거 전차가 경사면 주행 시에도 고장이 심해 운전자가 세심하고 부드럽게 조작해야 했습니다.

▶ 티거 전차의 장,단점

티거 전차는 많은 정비소요와 낮은 생산성, 그리고 독일 전차들의 고질병인 낮은 연비 등의 문제가 있었지만 대단히 우수한 전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주로 교전하던 T-34나 M4 셔먼 등보다 높은 중전차라는 체급 차이와 개전 초기부터 티거 전차와 함께 산전수전 다 겪으며 모든 상황에 숙련된 승무원, 그리고 방어자의 이점이라는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연합군의 전차 부대에게 막대한 손실을 강요한 것은 그만큼 전투력이 뛰어나다는 확실합니다. 즉, 전투력 자체만 놓고 본다면 매우 우수한 전차임은 확실합니다. 


티거 전차는 단순한 수치상의 공·수·주뿐 아니라, 공간 설계 자체가 넉넉하고 여유로운 데다 여러모로 승무원들을 배려한 설계로 인해 승무원들의 거주성 및 조작 편의성, 전투 지속 능력 등 카탈로그에 나오지 않는 장점들도 훌륭했습니다. 특히 이들이 주로 상대했던 소련군 전차나 영국군 전차들의 형편없는 편의성을 고려하면 비교가 민망할 지경입니다.

 

그러나 티거 전차는 전투 외적인 부분에서는 문제가 상당한 편이었는데 생산성이 형편없어서 항상 필요한 숫자에 비해서 턱없이 적은 수만이 존재했고, 정비가 복잡하고 힘들어서 높은 정비 소요와 함께 낮은 연비로 인해 대전 후반에는 연합군의 공세를 저지하지 못하는 상황이 빈번해 병기로서는 심각한 결점이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전장에 투입되는 전투 인원들은 물론이고 장비들을 운용하고 지휘하는 지휘관들에게는 크게 다가오는 문제인데 일례로 당시 동부전선의 오토 카리우스는 전투 중 전차에 손실이 생기거나 기동 불능에 빠지면 밤 중에 돌아가 견인해 왔습니다. 그나마 정비와 관련된 문제의 경우에는 티거 정비반이 대대마다 배치가 되어있고 이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은 덕분에 다른 전차들 이상의 가동률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떨어지는 생산성과 연비는 끝까지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 나치 독일이 티거 전차를 선택한 이유

나치 독일의 관점을 생각하면 티거는 최선의 선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중전차인 티거를 만들 자원이면 3대의 4호 중형 전차를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티거의 3배의 4호 전차를 생산할 수 있다고 해도, 전투력이 압도적인 티거와는 달리 4호 전차는 T-34나 M4 셔먼과 대등한 수준에 불과했으므로, 4호 전차 3대가 티거 1대분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기대도 어렵습니다. 설사 티거를 포기하고 티거 만큼 4호 전차를 찍어냈다고 하더라도, 티거 2000대를 4호 전차로 바꾸면 6000대에 불과합니다.

 

혹자에 따라서는 티거 1대 비용으로 4대로 생각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정도 숫자로는 T-34와 M4 셔먼의 압도적인 생산량 앞에 한 줌에 불과하며, 낮은 정비 소요를 고려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이는 전차가 파괴당하면서 잃는 정예 전차병의 인적 소모를 바탕으로 하는데, 고질적인 병력 부족 문제에 시달리던 독일에게 있어 더 빨리 망하는 짓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티거 전차 사격 장면

▶ 티거 전차의 깨알 상식

일본군 역시 티거를 도입하려 했던 전적이 있다. 1943년, 독일에 사절차 방문한 일본 장교단이 티거의 위용을 보고는 한눈에 반해 즉석에서 구매계약을 체결하고 2대분의 대금까지 완납했다. 문제는 독소전이 한창이던 때라 육로로는 일본으로 수송할 수단이 없었으며 티거같이 무거운 물건을 수송할 수 있는 잠수함도 없던지라 독일에서는 무슨 방법을 써도 일본으로 운송할 수 없었습니다.

 

1944년 2월, 티거 전차 두 대와 판터D형 하나가 보르도 항으로  일본 측에선 수송할 방법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서 그해 여름까지 그 티거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도 이미 대금을 양도한 물건을 차마 환불해 달라는 말을 하기는 뭐 했던지 구입한 2대분은 독일이 양도해서 서부전선 어딘가로 보냈다고 합니다. 

다만 일본이 티거전차를 자국까지 수송하는 데 성공했더라도 전황에 별 영향은 끼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원산지인 독일이 충실하게 증명했지만 전쟁은 결전병기의 원맨쇼로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장 독일군도 1천여대가 넘는 티거를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패망을 막지 못했다. 단 두대의 티거로는 큰 의미가 되진 못했을 것입니다.

 

[나무 위키 티거 전차 요약및 참고]

 

6호 전차 티거 - 나무위키

[ 펼치기 · 접기 ]전간기 차량피우수트스키 장갑차, 포드 Tf-c, 오스틴-푸틸로프O, 제프리-포플라프코O, 가포드-푸틸로프O, 에르하르트 E-V/4O, 피어리스O, 피아트-이조르스키O, 푸조O, 카든 로이드 Mk.

namu.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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