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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덕 ,잡학/밀리터리[military]밀덕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거북선의 모태 판옥선(판옥선 장단점제원)!!

by 신나는 미니언 _$_@_ 2021. 12. 23.

임진왜란 당시 조선이 일본 왜국에게 승리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 보다도 재해권(해상권)을 장악 할 수 있었기에 일본 왜국의 보급로 차단과 병력 수송을 어렵게 했기 때문일것 입니다.

그 당시 일본 수군의 배에 비해서 조선 수군의 판옥선은 견고하고 방향 전환 능력이 탁월했으며 전투할 수 있는 공간이 넓었습니다. 반면 둔중해 속력이 느렸으며 썰물 때 돌진이 어려웠으며 속도또한 느렸습니다.

하지만 방어전에 있어서는 조선의 판옥선은 그야 말로 명불허전 이었던것 입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466년 만에 판옥선을 복원한 결과가 담긴 보고서 ‘판옥선’을 발간·배포했습니다. 판옥선의 규모는 길이 32.16m, 너비 8.74m, 높이 5.56m, 중량 140.3t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판옥선의 재료로는 소나무와 함께 노나무·전나무·느릅나무 등 다양한 목재가 이용됐으며, 쇠못과 나무못이 함께 사용됐다고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측은 소개했습니다.

출처: 다음 카페 플라모델 사진

이번 연구에서 새롭게 밝힌 사실은 판옥선의 바닥이 전통 한선(韓船-중국의 함선)처럼 평평한 것이 아니라 선수와 선미 부분이 부드럽게 휘어 올라와 있다는 것입니다. 파도와 부딪힐 대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연적으로 휜 목재를 썼다고 발표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조상님들의 참으로 놀라운 과학적 지식 입니다.

이외에도 조상님들의 과학적 노력이 있는데요, 또 다른 하나는 새로운 발견은 노의 형태입니다. 나무 두 개에 못을 박은 전통 노는 삐걱거리고 추진력이 떨어져 큰 배를 감당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나무 하나를 써서 손잡이를 T자 형태로 만든 새로운 노를 개발했습니다. 새로운 노는 전후방을 주시하며 젓는 ‘추진형 노’와 방향을 제시하는 ‘조정타 노’의 성격을 모두 갖춰 추진력과 방향 전환 능력이 모두 뛰어났다는 것입니다.

판옥선은 평평한 갑판 위에 널판을 세운 뒤 덮개를 덮어 노를 젓는 노군(櫓軍)을 보호할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보고서는 “사수·포수·화포장 등 군사들이 상갑판 위의 넓고 높은 장소에서 효율적으로 전투를 치를 수 있게 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앞서 언급 되었듯이 판옥선의 여러 장점도 있지만 단점 또한 명확한데요 다만 당시 기록을 통해 판옥선의단점도 확인했습니다.


썰물 때에는 판옥선이 쉽게 돌진할 수 없다는 부분, 지형이 좁고 암초 같은 것이 많을 때는 서로 부딪치게 되어 공격하기 어렵다는 점, 둔중하고 속력이 느리다는 점 등입니다. 또한 병사들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전복된 기록으로 보아 복원성에 결점이 있다는 것도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임진왜란 당시 공격적인 전투가 아닌 해상 방어에 있어서는 판옥선은 매우 유용한 군함이었던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판옥선은 왜군의 함선에 비해서 튼튼해서 돌격 충돌시 탁월한 전과를 올린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조선수군 판옥선 제원]

임진왜란 당시 다큐멘터리를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것이 조선 수군 주력 전투함인 판옥선이듯 합니다. 튼튼하고 또한 배 양옆으로 각종 화기가 장착된 조선 수군의 주력 전투함인 판옥선은 그 위에 철갑을 두른 거북선의 모태가 되었던 함선 입니다.

또한 일본 왜군의 배보다는 속도는 느리지만 배 밑면이 평평해서 해상 진지 구축이나 방어에 있어서는 그시대에 가장 우수한 전투함이 바로 판옥선 입니다.

또한 충돌시 일본 왜군의 배들보다 튼튼해서 돌격과 충돌이라는 전법을 사용해서 우수한 전과를 올린것이 바로 판옥선 입니다.
거북선도 이러한 전법을 많이 사용했던것으로 알려진것은 바로 거북선의 바탕이 판옥선이기 때문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방적으로 우리가 일본에 당했다는 식민사관이 아직도 판을 치고 있는데요, 사실 임진왜란은 조선이 승리한 전쟁이 확실합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까지 우리 조선이라는 나라는 무려 200년 가까이를 평화롭게 살고 있던 나라였습니다. 전혀 전쟁 대비가 없었다는것 입니다.

하지만 임진왜란 당시 일본 왜군의 주력 무기인 조총의 유효 사거리가 50m 내외였지만, 조선의 각궁의 사거리는 무려 200m가 넘었습니다.

즉 신문물인 조총에 대한 정확한 정보만 있었더라도 그렇게 쉽게 조선이 한양을 버리지는 안았을것 입니다. 또한 신기전이나 각종 화포는 일본의 기술을 압도하였기에 전쟁 초반에 잘만 대응했다면 아마도 조선의 완전한 승리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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